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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든 남편과 전처의 귀여운 딸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어쩐지 불편하다


    *


    <왕비는 마법 거울이 들려준 소식을 듣고 공주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비는 사냥꾼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숲 속으로 가서 공주를 찾아라. 공주의 심장을 꺼내어 내 앞으로 가져오도록.” 사냥꾼은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를 차마 죽일 수 없었지만, 왕비가 부리는 무시무시한 흑마술이 두려운 나머지 숲으로 향했습니다.>


    *


    마차는 숲으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의 풍경은 끝없는 수림이었고 길은 고르지 않았다. 바퀴축의 충격흡수장치가 거르지 못한 진동은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졌다.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 와중에도 맞은 편의 에블린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새삼 감탄했다. 그녀는 위터 왕궁의 엄중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재현하고 있는 듯 했다. 살짝 눈을 내리감고 있던 그녀는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뜨고 날 쳐다보았다.

    "불편하신 점이라도?"
    "아뇨. 없어요."

    그러자 에블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대를 사용하십시오. 이제 곧 여왕이 되실 분입니다."

    아차 싶었다.

    "그, 그렇죠. 아니. 그래. 알았다."

    내게 속성 왕궁예절을 가르쳐 온 교관이 가볍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빅토리아님은 이제 에이모라임 왕국의 왕비가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왕비님의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곧 위터 왕국을 대신하게 됩니다. 부디 늘 사려깊게 행동하고 말씀 하나에도 신중해주십시오."

    오늘도 에블린의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더라. 그렇다. 굳이 대답할 필요없이 가볍게, 그러면서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고 했다. 윗사람의 위엄이 묻어나도록, 아랫사람의 충언은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이. 배운대로 해주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숲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머리 속에 지도를 떠올려본다. 위터 왕국 남부에 위치한 사막을 지나 도착한 이 숲의 이름은 타임라 숲. 대륙의 허파라고도 불리는 이 크고 넓은 숲을 지나고 나야 에이모라임 왕국이 나온다. 작고 조용한 나라 에이모라임 왕국. 그곳의 왕족이라고는 늙은 왕과 어린 공주 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제 곧 나는 그 나라의 왕비가 된다.

    (중략)

    왕은 내게 말했다.

    "나같이 배 나온 수염쟁이 남자에게 시집오게 해서 그대에게 미안하게 되었소. 내 의지가 아니었다오. 나는 전처를 아직 못 잊고 있는 중이니, 당신에게 손 끝 하나 대지 않으리다."

    그러더니 몸을 내 쪽으로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따로 애인을 만들어도 좋소. 혹시라도 왕 자리가 탐나 나를 독살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그렇게 하시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기도 전에 공주가 외쳤다.

    "그래요, 새어머님! 가진 건 허수아비 왕관 밖에 없는 우리 아빠한테 시집오시다니 많이 힘드실 거예요. 혹시 제가 거슬리면 저도 독살하세요."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니, 이 부녀는 눈물나게 귀여운 얼굴들을 해서는 지금 대체 뭐라고 하는 거냐고 묻는 대신 공주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독살…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는 겁니까. 공주님?"

    공주는 마치 영특한 학생처럼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책에서 봤어요. 보통 새왕비님들은 공부를 박해하더라구요. 저한테 심부름이나 설거지를 시키시려면 언제든 부르세요. 요새 저걸로 연습도 하고 있거든요."

    공주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는 손잡이 달린 나무통이 놓여있었다. 접견실에 대체 저런 게 왜 있는 건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공주의 소지품이었을 줄이야.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공주가 아주 소질이 있소. 이 접견실만 해도 왕비가 오기 전까지 시녀들을 모두 물리치고 공주가 직접 쓸고 닦고 열심히…"

    더 이상 듣고 있자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저는 공주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습니다. 설거지도 물론이구요."

    그러자 공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어, 어, 그럼…"

    울상이 된 공주는 자기 아빠를 바라보았다. 왕도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럼 독살도…"
    "안 해요!"

    공주는 울음을 터지기 직전이 되었다. 울고 싶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대체 내게 뭘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공주를 달랜 건 왕이었다. 공주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그의 목소리가 원체 커서 다 들렸다.

    "독살은 아니라고 단언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마법인가 보구나."

    공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두 주먹을 앙증맞게 꼭 쥐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이죠! 그쵸?"
    "아니, 마법은 전…"
    "새어머님의 머리는 아름다운 흑발이니까 흑마법이 틀림없어요. 그렇죠?"

    아름다운 흑발…. 도대체 머리 색깔과 사용할 줄 아는 마법의 종류가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왕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는 내게 살짝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저 사인의 의미는, 그러니까…

    "쉬잇. 공주야. 원래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법을 숨기는 법이란다. 그렇게 캐물으면 안 돼."
    "아, 맞다."
    "그렇지 않소, 부인?"

    이번에도 다시 윙크. 살짝 한숨을 쉬며 이 ‘연극’에 동참하기로 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점잖게 말했다.

    "그, 그래요. 공주. 함부로 알려줄 수 없군요."
    "역시! 그런 것이었군요!"

    울음 직전에서 흥분으로 달아오른 공주는 이제 얌전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굴 가득한 기대감은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제 저 귀여운 눈망울에 담긴 기대감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언제고 나를 대상으로 마법을 쓸테니 그때는 무슨 마법인지 알 수 있겠지.’라는 내용일 거라는데 얼마 되지 않은 내 패물을 전부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목가적인 오해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

    (후략)

    • 3월 15, 2014 (2:14 pm)
    • 2 notes
    1. nunien836s님이 좋아합니다.
    2. amoraim님이 좋아합니다.
    3. realkaracha님이 포스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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